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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재락 대표, 간절함의 산물 ‘잘풀리는집’으로 부활

작성일201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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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적대적 M&A 당한 이후 처절함으로 승부 일궈
성인용 기저귀 시장 선점으로 업계 최고 브랜드 노려
 

‘세상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생각과 희망을 갖게 하고 잘 풀리는 사회가 되도록 힘쓸 겁니다.’ ‘화장지가 아니라 희망을 팔고 싶습니다.’

미래생활㈜이란 회사 이름보다 ‘잘풀리는집’이란 브랜드로 더 유명한 변재락 대표(54). 한때 비바, 뽀삐, 땡큐 등 ‘두 글자’ 이름이 대세를 이루던 화장지 시장의 공식을 깬 ‘잘풀리는집’을 만들며 성공 신화를 썼다. 사람들의 행복한 미래를 기원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제품명 덕에 집들이 선물 1순위로 떠오르며 제지업계 3위의 자리에 올랐다.

그에게 ‘잘풀리는집’ 화장지는 단순한 기능성 제품이 아니다. 그것은 희망이고 사람의 정과 따뜻한 마음이다. 한편으론 가장 힘든 시기에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한 절박함과 간절함, 차별화의 산물이다. 화장지 그 이상의 가치, 즉 감성적 가치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부친이 일군 기업 모나리자가 거대자본에 넘어간 뒤 다시 인수 실패 후 살기 위해 처절한 사투 끝에 탄생한 것이 ‘잘풀리는집’이다.

어렵사리 인터뷰 일정을 잡아 최근 사무실에서 만난 변 대표는 매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는 “언론에 보도될 만큼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지 않다보니 인터뷰하는 것 자체가 쑥스럽고 부끄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화장지 하나에도 가치를 담고 싶었고, 브랜드 스토리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싶은 바람에서 응했다”고 했다.

잘풀리는집은 ‘문화와 가치’를 창조

화장지 브랜드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냐고 묻자 변 대표는 “집들이나 개업식 때 선물로 들고 가는 화장지에는 ‘앞으로 일이 잘 풀리기를, 사업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며 “화장지를 선물하는 문화와 시장을 창조하며, 나아가 희망과 정을 판다고 생각하면 한낱 화장지 회사에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시장이 보인다”고 했다.

그에게 화장지가 ‘문화’와 ‘가치’를 창조하는 상품으로 보이기 시작한 건 2003년 무렵. 두 글자 제품명이 대세를 이루던 화장지 시장에서 ‘잘풀리는집’이라는 다소 긴 이름으로 두루마리 화장지를 출시하면서부터다. 소비자의 눈길을 끌며 집들이 선물 1순위로 큰 인기를 모았고, 덩달아 회사도 ‘잘’ 풀렸다.

아버지 때부터 이어오던 회사가 부도가 나며 모든 걸 잃어야 했던 변 대표. 회사가 부도가 나며 모든 것을 잃고 빚까지 떠안으며 큰 좌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를 믿고 곁을 지켜 준 직원들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다짐을 했다. 아버지 회사를 되찾겠다는 신념으로 직원들의 손을 잡았고, 직원들의 퇴직금으로 화장지 판매회사를 차렸다.

전국의 대리점을 돌며 자신이 만든 회장지를 알린 변 대표는 ‘잘풀리는집’으로 재기의 발판을 만들 수 있었다. 설비와 품질 경쟁력을 갖추고 고급화 전략을 꾀해 화장지 뿐 아니라 미용 티슈 등 화장지의 모든 종류를 휩쓸며 성공 CEO로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1970년대 모나리자 창업, 국내 화장지 역사를 쓰다

변 대표가 한때 국내에서 ‘잘 나가던’ 모나리자의 2세 경영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모나리자는 변 대표의 아버지 변태섭(미래생활㈜ 명예회장)씨가 창업한 회사다.

화장지가 보편되지 않던 시절인 1972년, 변태섭씨와 동생 변자섭 및 자섭씨의 친구 권영화씨 3명은 대전 동구 자양동에 가내수공업 형태로 ‘쌍마공업사’를 설립하고 화장지 가공업을 시작했다.

 

1961년 국내 최초의 화장지회사인 무궁화화장지가 설립됐으나 업계서는 실질적으로 1970년 설립된 유한킴벌리(유한양행+킴벌리클라크 합작회사)를 국내 최초의 회장지 회사로 보고 있어 사실상 쌍마공업사는 국내 화장지 역사와 다름없는 셈.

이후 모나리자 브랜드가 전국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사업도 분할했다. 이 3명은 1976년 모나리자를 설립하고 각각 지역 분할을 통해 법인을 나누게 된다. 변 대표의 부친 변태섭씨는 모나리자 대전을, 작은아버지 자섭씨는 모나리자 서울을, 권영화씨는 쌍마를 맡아 사업을 했다.

대전법인은 대전충청권과 호남 및 경기도 일부 지역을, 서울법인은 서울과 경기지역 및 강원도를, 대구에 거점을 둔 쌍마는 영남권을 각각 맡아 시장 공략을 하게 된다. 3명이 일종의 ‘신사협정’을 맺어 모나리자 브랜드에 대한 공동 마케팅과 공동 상표를 개발해 판매했다. 이 때 만들어 진 화장지가 ‘땡큐’ ‘굿모닝’이다. 법인이 분리된 1976년부터 1980년대에 모나리자는 전성기를 맞는다.

모나리자, 1990년대 몰락의 길로

모나리자는 1990년대 들어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경쟁사가 출현하면서 공급 과잉 등에 따른 출혈경쟁으로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앞서 1979년 쌍용그룹은 계열사로 쌍용제지를 설립했다. 쌍용이 만든 화장지 ‘비바’는 1995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기도 한다. 또 1985년 LG그룹 구자경 회장의 사위인 최병민 회장이 금강제지를 인수해 대한펄프를 설립하고 화장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나리자의 실질적인 위기는 안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초 변 대표의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및 친구 3명이 경영할 때는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작은아버지가 건강상의 이유로 서울법인을 A기업에 넘기면서 내분이 시작된 것.

모나리자 서울법인이 A기업에 넘어간 뒤부터 그동안 해 오던 모나리자의 신사협정 자체가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 변 대표는 “사실상 세 분이 경영할 때 해 오던 일종의 ‘신사협정’ 자체가 지금 시각으로 보면 공정거래상 문제가 되는 거였다”며 “당시 A기업이 다른 모나리자 법인을 ‘힘(자본력)’으로 ‘죽이기’ 시작하면서 위기가 왔다”고 했다.

서울법인이 대전 등 타 지역에도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출혈경쟁이 이뤄졌다. 이런 현상은 1995년부터 1997년까지 3년간 극심히 벌어졌다. 변 대표는 이를 ‘(모나리자) 3년 전쟁’이라고 했다.

대전법인은 같은 모나리자 내 다른 법인간 경쟁을 벌이는 사이 체질이 허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외환위기를 맞았고, 이게 직격탄이 되면서 대전법인 역시 부도를 맞았다. 부친이 세운 모나리자가 사실상 끝나는 순간이었다.

변 대표는 곧바로 법원에 화의 신청을 했다. 화의 인가 조건으로 부친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고, 변 대표가 회사를 살리겠다는 차원에서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하지만 이미 막대한 자본에 무릎을 꿇은 모나리자를 회생시킬 묘수가 없었다. 서울과 대전 법인이 같은 이름을 쓰지만 갈등의 골은 깊었다. 대리점에 찾아가 우리(대전법인)와 거래를 하면 물건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협박을 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했다. 변 대표는 이때를 생각하기조차 싫을 정도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기업’이 아닌 ‘업(業)’을 잇다

변 대표는 외환위기와 내분 등의 여파로 회사가 부도나면서 모나리자의 경영에서 손을 뗐다. 하지만 다시 모나리자를 재건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했다. 간절함과 절박함을 느끼던 순간이다.

모나리자는 결국 화의를 거쳐 남의 손에 넘어갔다. 그는 화의 때 구조조정의 하나로 별도 법인으로 분리해 놓은 판매회사를 통해 재기를 노렸다.

당시 모나리자 부도 이후 영업부 직원 70명을 이끌고 2000년 회사를 설립했다. 직원들의 퇴직금을 모아 자본금 20억원으로 미래생활의 전신인 ‘엠2000’(모나리자의 약자)이라는 회사를 세운 것. 모나리자의 제품을 판매하는 영업회사였다.

하지만 서울법인이 대전법인을 인수하자 제품 공급도 미루는 등 여전히 사업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후 모나리자 재인수에 실패한 후 마음을 바꿔 먹고 모나리자를 넘는 한국의 대표 화장지를 만드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갖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것이 화장지 사업. 변 대표는 “가업을 승계했다는 것보다 ‘업’을 물려받은 것”이라며 “미래생활은 옛 모나리자 직원들이 출자해 만든 회사여서 화장지 업의 승계는 이뤄진 셈”이라고 했다.

‘잘풀리는집’ 만들면서 회사도 ‘잘’ 풀려

변 대표는 “‘잘풀리는집’은 가장 어려웠던 시절, 우리가 다시 잘 해내자는 소망을 담은 간절함과 절실함의 산물”이라고 했다

 

변 대표는 브랜드에 걸맞은 아이템도 넣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문자메시지를 화장지에 새긴 것. 사람들은 화장지를 풀 때마다 ‘부자 되세요’, ‘행복하세요’라는 글귀를 보면서 즐거워했다. 회사는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변 대표는 “‘잘풀리는집’은 단순한 화장지를 넘어 선물을 할 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는 가치를 담아냈다”며 “소비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품질 외에도 이런 가치를 전할 수 있는 상품이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명함 뒷면에 ‘잘풀리는집은 세상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생각과 희망을 갖게 하고 ’잘‘ 풀리는 사회가 되도록 합니다’라는 문구를 새겨 넣고 다닌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제품의 브랜드 정신이 담겨 있다는 것. ‘잘풀리는집’은 엠2000과 모나리자 간 싸움에서 진 뒤 간절함과 절박함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나은 산물이다.

 

처음부터 잘 팔렸던 건 아니다. 모나리자의 ‘땡큐’, 유한킴벌리의 ‘뽀삐’ 등이 주력상품이던 화장지 시장에서 낯선 이름의 제품을 매장에 입점 시키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대리점을 직접 찾아가 ‘다른 제품 5개를 파는 마진을 잘풀리는집 하나로 얻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설득했다. 그렇게 구두 밑창이 닳도록 전국 대리점을 돌아다녔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으며 잘풀리는집은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2006년 사명을 미래생활㈜로 변경했다. 판매회사에서 제조 까지 시작한 것. 품질에도 신경을 썼다. 새로운 설비를 들여오면서 겹장 정도였던 두루마리 화장지 시장에서 처음으로 자체 생산설비로 3겹 제품을 내놓았다.

2011년 세종시 부강면 일원에 약 400억원을 투입해 세종공장을 완공, 본사를 이전하고 가동에 들어갔다. 가공공장으로 보면 국내 최고급 생산 시설이다. 생산량도 배 가까이 늘어났다

 

긍정’의 마인드, 사람들의 미래 생활이 행복하기를

변 대표는 “경영 전면에 나선 후 천당과 지옥을 오가기도 했다”며 “부도가 난 전 회사에서의 생활은 말할 수 없이 힘들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회사를 새로 일궈 나가는 과정은 말할 수 없는 성취와 보람을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에서 체득한 것이 ‘긍정 마인드’다. 대부분 중소기업인들은 원가 이하의 판매가격이나 인력 배치 요구 등 대형마트의 횡포에 힘들어 한다. 그도 대형마트에서 독과점이나 일등상품이 아니면 이익내기가 쉽지 않다는데 공감한다.

변 대표는 이 같은 시장의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불만 토로에 그치지 않았다. 대형마트에서 겪는 애로를 ‘내셔널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홍보의 장’이자 ‘무리한 요구를 극복하기 위한 아이디어 생산의 창고’로 해석했다. 그래야 더 가치 있는 제품이 나오고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

사업 다각화, ‘최고의 화장지 브랜드’ 목표

현재 미래생활은 화장지 뿐 아니라 미용 티슈, 키친타월 등 화장지의 모든 종류를 섭렵하며 모나리자를 제치고 제지회사 3위의 자리에 올랐다. 작년 말 13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직원도 400여명으로 늘어났다.

현재 제지업계는 유한킴벌리(미국 킴벌리클라크가 지분 70% 소유), 깨끗한나라(LG그룹에서 분리)가 1, 2위다. 모나리자는 2013년 글로벌 금융기업인 모건스탠리에 인수됐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화장지 브랜드를 만드는 게 목표다.

하지만 화장지 시장은 이미 성숙돼 있고 경쟁도 치열하다. 그래서 사업 다각화를 위해 성인용 기저귀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것. 그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특성상 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이를 위해 인터뷰 다음날 이미 고령화가 돼 있는 일본에 시장 조사차 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대전지역 2세 경영인들의 모임인 ‘미래경영인모임’의 회원이다. 2세 경영인이었지만 독자 노선을 걸으며 재기에 성공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자녀들에게 무조건 경영을 잇게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변 대표는 “감내할 수 있는 어려움을 겪어가며 성취하는 보람만 물려주고 싶을 뿐, 자식들에게 가업을 승계하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업 승계 역시 두 가지 조건을 달았다. 본인이 정말 하고 싶어야 하고, 본인의 역량과 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 이게 갖춰지지 않으면 가업 승계는 안 시킬 것이라고 했다. 부모한테 단순히 물려받은 것들은 지키기도 힘들고, 축복이라고 생각지도 않기 때문이란다.

이제 웬만한 어려움은 모두 해쳐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역설적으로 그동안 겪은 고난과 역경이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 창업자들에게도 어려운 환경일수록 쉽게 포기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쳐 나가길 권한다.

막막하고 가장 안 풀리던 시기에 탄생한 ‘잘풀리는집’. 간절함과 절박함에 대한 ‘신의 선물’이라며 브랜드에 무한 애착을 갖고 있다는 변 대표는 이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포기하지 않으며, 긍정 마인드를 갖춘 ‘잘 풀리는’ CEO의 대표 아이콘이 됐다.  

 

[변재락 대표 약력]

-1960년 충주
-충남대 경영학과 졸
-모나리자 대전법인 기획실장(1993년)
-모나리자 대전법인 대표(1999)
-미래생활㈜ 대표(2009)
-대전상공회의소 의원(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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